IT이야기/커리어 회고록

내가 제조업계를 떠난 이유 (본격 개발자 퇴사 썰)

개발자 김모씨 2020. 9. 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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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조업계를 떠난 이유 (본격 개발자 퇴사 썰)>


퇴사썰로 찾아뵙는 개발자 김모씨입니다.

오늘은 왜 제가 제조업계를 퇴사하고, 현재 회사로 이직을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최근에 개발자 꼬동 님의 글을 보고
저도 저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정신나갔냐며 두손 들고 막는 주변의 만류에도, 많은 걸 포기하면서도,
퇴사를 결심했던 이유.
이직을 결심했던 이유.
시작합니다.


<이미지 출처 : 히릿>

저는 25살의 나이로, 2018년 1월 누구나 아는 그 그룹의 반도체 쪽에 입사했습니다.
남자 치고 굉장히 빠른 나이었죠. 휴학 한번도 없이, 군휴학도 최소로 하고 달렸으니까요.
첫회사는 저에게 아직도 인상 깊었던 게,
입사날(신입 연수원에 들어간 첫 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ㅎㅎㅎㅎㅎ 선물같은 회사였죠
회사에서 생일파티를 해주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
몰래카메라도 해주고, 동기들이랑 같이 생일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고마웠던 회사입니다.

각설하고,
저는 연구소로 배치받아서 화성에서 근무했습니다. 운이 참 좋았죠.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는...
책임급 이상에는
해외대(진짜 이름만 들어도 아는 미국 대학)부터 카이스트/포항공대/SKY 박사분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애초에 저 같은 학사 출신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Cause 1. 컴퓨터공학 출신이 별로 없다.

 

출처 : 우아한Tech 페이스북(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되게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제조업계라서 그런지,
회사에서 컴퓨터공학 출신 개발자보다
전자과 출신 개발할 줄 아는 사람 / 기계공학과 출신 개발할 줄 아는 사람
을 더 선호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 물론, 여기서 확실히 말하건데,
요즈음의 비전공자 출신 개발자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비하하고 비난하고 싶은 건,
책임급 이상의, 성장 욕심이 없는, 비전공 출신 SW 직군 분들이에요.
그 분들을 '개발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전 잘 모르겠습니다.

디자인 패턴이나 안전성, 재사용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코드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흔히 레거시 코드(다른 코드와의 개연성을 무시한 채 Due Date만을 위해 기능만 개발한 코드)라고 하죠.
C++로 짜진 코드인데 무슨 80년대 C언어 코드처럼 짜진 것들은 셀 수도 없고요.
Git을 사용하는 부서도 드물어서, 코드 안에 주석처리로 다 박아두니 한 파일이 몇만라인에 다다르는 것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Git 등의 버전관리 툴을 강제하는 추세로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의 산물들이죠.)

그런 부분에 대해 리팩토링을 건의한다거나,
이슈성이 있는 코드에 대한 수정을 건의하면,
"지금 잘 돌아가고 있는 코드인데, 굳이 왜 고쳐? 그러다가 그거 적용해서 라인 스탑되면 책임질거야?"
하는 답변을 들을 수 있습니다. 허허

성장 욕심이 없는 책임급/부장급들,
돈 많이 주니 안주하고 욜로를 즐기는 사람들
때문에 저는 회사를 그만둬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많습니다. 저런사람들.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저로썬 보기가 힘들었네요.


Cause 2. 커리어 고민

 

개발을 좋아하는 개발자라면,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뭘까요?
"나는 백발이 되도록 개발자로 늙고 싶어"
하는 마인드가 아닐까합니다. 공감하시는 분 계시나요?

2018년 1월에 입사를 해서
2년이 지난 20년 즈음, 저는 커리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통 1~3/4 년차를 쥬니어, 5~9/10년차를 미들급, 11~ 시니어 레벨이라고 한다죠.
3년차 개발자가 된 2020년 중반,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저는 데이터 엔지니어 가 되고 싶다고 커리어를 결정했습니다.
관련 분야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어서 관심이 컸고,
2년 반 동안 그런 일을 하기도 했고요.
N년 후, TB/s급의 데이터를 컨트롤하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요.

물론, 사내에서도 데이터 분석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데이터엔지니어에 대한 수요는 있었지만,
(생산 설비 고장 예측, 수율 증가 등을 위한 분석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배가 쉽지도 않았을 뿐더러,
제조업계에서 나오는 정형데이터(보통 센서닝 데이터라서, 실시간성은 크지만 정형에 속하죠)가 아닌
실생활에 가까운 서비스 업계에서 쏟아지는 데이터를 다루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Cause 3. 상명하복, 꼰대, 정치 문화

대부분의 제조업계 개발자가 퇴사를 결심하는 이유 중 하나죠.
상명하복, 까라면 까! 하는 식의 문화입니다.

근데 여기서, 저는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우선 그룹 자체가 폭언이나 직장내괴롭힘에 굉장히 엄격했고,
책임급 이상의 박사 분들은 대부분 상호 존대하고 존중을 많이 해주시는 편이어서,
제가 듣고 흠칫흠칫 놀랬던 다른 분들의 고생했던 이야기에 비하면 그 정도가 턱없이 부족할 순 있습니다.

그래도 있긴 있었죠....
턱없는 기간을 주면서, 무조건 해내라고,
자기는 실무할 때 밤새가면서 했다~ 그러면서 실력이 느는거다~ 다 경험이다~
이딴 X소리들...지겹도록 들었었습니다.

저는 이 이유를 생각한 게,
아 여기가 SW 중심회사가 아니라서, 개발자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임원진들 중에 개발자 출신들이 많이 없어요.
그래서인지 이슈에 따른 일정 지연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실 퇴사를 결심할 때,
인턴을 제외하고는 첫번째 회사였기에
다른 회사도 다 이런건지, 여기 회사가 제조업계라서 유독 좀 그런 면이 있는지
를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있었습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이건 제조업계여서가 아니라, 그냥 회사 자체가 그런 걸 수도 있겠네요 ㅎㅎ

다만 확실했던 건,
밖에서 보기엔 정말 최고의 회사이고 연봉도 최고 수준으로 부러워하지만,
내가 개발자로써는 여기서 대접받지 못하는구나
나는 여기서 개발자가 아니라, 설비 부품처럼 취급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발자로써 존중받는 회사로 가야겠다 라고 결심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2년 반의 커리어 + 3개월의 인턴 경험
2년 7개월? 정도의 커리어를 가지고 이직 시장에 뛰어들게 됩니다.


사실, 이 회사로 이직하면서 연봉을 좀 포기했어요 ㅎㅎㅎ

이직 시장에 뛰어들어 다녔던 수없이 많은 면접들에서
최종 연봉 협상때, 이정도 커리어 경력에 이 금액을 맞춰줄 수 있는 IT 회사는 없어요~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ㅎㅎㅎ
내가 꿈꾸는게 있다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구나.... 라는 교훈을 얻었던 순간이었죠

저는 커리어를 위해서 연봉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분당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Kubernetes 기반의 MLOps, Data Engineering 일을 하고 있죠.
(MLOps : ML + DevOps)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지금도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네요 ㅋㅋㅋㅋ
불만사항이 꽤 있는데....지금 회사에서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풀어볼게요.


커리어 측면에서, 아니면 어떤 부조리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제조업계 개발자 분들 화이팅입니다!!! ㅠㅠㅠㅠ
주절주절 적었지만
공감되고 커리어의 판단에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네요.

지금 하고 계신 고민들은,
언젠가 누군가가 했던 고민들이에요.
개발자 분들과 좀 더 소통하면서 고충을 토로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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